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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관리자

1965년, 56년 전에 헤어진 이복형제와 아버지 얼굴, 추억을 찾았습니다.

저(1962년생)는 아버지(1965년 사망, 전처 사망에 의한 재혼, 2남 1녀 상태), 엄마(2021년 6월 사망, 초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나오셔서 재혼하여 여동생과 남동생을 낳으셨습니다. 저는 4살 때여서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일절 이야기 해주지 않으셨고 저도 묻지 않은 채 지냈습니다. 7년 동안 아팠던 엄마를 돌보면서도 아버지 이야기를 묻지 못했던 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후회가 너무 되었습니다.

환갑이 되고 사회생활을 마치고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부쩍, 이복형제들과 연락이 되어서 인사도 나눌 수 있으면 나누고, 최소한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 사진도 보고, 묘소라도 가서 너무 늦었지만,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엄마 사망신고 등 행정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 호적이 두 개가 있는 것을 발견하여, 법원을 통해 이중호적정리를 하면서 법원에 형제 분들의 주소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내고 이를 승낙해주어 거주지가 기록된 서류를 발부 받고, 오래전에 모두 미국으로 이민 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법원의 도움으로 외교부를 통해 연락처를 찾으려 하였지만, 전산화되기 이전이라 찾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국에 있는 친지께 교포사회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강효흔 탐정님을 소개 받고 형제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가지고 10일 만에 찾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형제분들도 저를 많이 찾았다고 하는데 제가 성공했습니다.

요즘은 거의 매일 화상 통화를 하면서 제가 기억 못하는 4살까지의 추억들을 듣고, 아버지와 가족들의 사진도 받고, 여우같이 예쁜 짓을 하며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또한 제 얼굴, 취향들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접 만나기는 어려우나, 좀 잠잠해지면, 한국에서 오빠, 언니와 함께 아버지의 추억의 장소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혈육이란 세월이 오래 지나고, 함께했던 기간이 짧았어도 금방 가족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고민하지 말고 헤어진 가족들을 찾아보세요. 2/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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