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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만의 상봉

2018년 5월 16일 업데이트됨

2004 년 7월 1일

 58년만에 형님 소식 접한 염한칠씨


“형님,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이제야 상봉하는가 싶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말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눈물. 신문을 통해 58년 전 생이별한 큰 형님을 찾았다가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걸 알게 된 염한칠(76)씨는 북받치는 슬픔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염한칠씨가 형님 염한길씨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지난달 26일.

새벽에 배달된 중앙일보를 무심코 펼쳐 든 한칠씨의 눈에 ‘한칠아 보고싶다’라는 기사제목이 대뜸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꿈에도 잊지 못할 큰 형님의 사진이 있었다.

“알아보기도 힘들게 늙으셨지만 눈매는 그대로더군요.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후 절 키워주신 형님, 제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운 가족찾기’ 사업을 하고 있는 사설탐정 강효흔씨를 통해 염한길씨의 가족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들뜬 마음에 당장 서울로 전화를 건 한칠씨는,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에 말문을 잃었다. 애타게 그리던 형님이 실은 10여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

큰형 한길씨 외에 세 분의 형님이 더 계셨지만 세째 형님은 6.25사변 때 전사했고, 다른 형님들도 몇 년 전 모두 작고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됐다. 막내를 끔찍이 사랑했던 어머니도 한칠씨만를 애타가 찾다 회한 속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전해들은 한칠씨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함경남도 이원군에서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한칠씨는 5세때 중국 흑룡강성으로 이주해 살았다. 16세때 모택동이 창설한 중국군대에 끌려가다 도망쳐 월남한 것이 그만 평생이별로 이어졌다.

“곧 따라 오겠다고 했던 형님들은 끝내 못 오셨습니다. 혈혈단신 월남해 신문팔이, 옷 장수 등 온갖 고생을 하다가 어느 정도 성공한 뒤 지난 81년에 이민을 오게 됐죠.”

남부럽지 않게 살며 세 자녀를 훌륭히 키워놓은 그였지만 단 하루도 가족들을 잊은 적이 없었다. 지난 88년 평양청년축제 참가차 방북한 미주 한인방문단을 통해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어떡해서든 가족을 찾아 환갑은 고향서 치르겠다’는 한칠씨의 메시지는 당시엔 전달되지 못했다가 최근에야 큰 형님의 유족들에게 전해졌고, 큰 형님의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풀어야 한다’며 삼촌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녀 또한 거의 10년을 찾아 헤매다 마지막으로 사설탐정 강효흔씨를 통해 미주 중앙일보에 도움을 청했는데 기사가 나간 지 하루만에 삼촌과 연락이 닿아 새삼 신문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형님의 마지막 유언이 ‘막내가 어디에 살아 있건 꼭 찾아서 내 무덤에 소주 한잔 올리게 하라’는 것이었다더군요. 돌아오는 추석엔 58년만에 큰 형님을 만나 술 한잔을 올릴 겁니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무릎꿇고 사죄도 드려야죠.” 그리운 가족들은 다시 볼 수 없게 됐지만, 조카와 손주들을 만나 못다 한 혈육의 정을 나누겠다는 염한칠씨. 비록 가족 상봉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58년동안 끊겼던 혈육의 소식을 전해 준 중앙일보에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양경아 기자 입력시간 :2004. 07. 01   2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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