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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의 세계 10회

한국 유일의 보안전문 월간지 시큐리티 월드가 미국의 탐정제도 및 강효흔 공인탐정의 실제 사건기록을 "탐정의 세계"란 제하로 2000년 1월부터 12월까지 12개월간 연재로 실었습니다. 인기리에 연재됐던 강효흔 탐정의 "탐정의 세계"는 월간 시큐리티월드 사에서 2000년도 단행본으로 발행됐으므로 구입해 보실 수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2000년 10월 - 12월까지 3개월분을 소개합니다.



2000년 10월호

연재 : 탐정의 세계

□ 첨단 장비로 무장한 산업스파이와의 브레인 파워 게임 □ 극비 신기술 프로젝트의 정보누출을 막아라

현대사회에서 정보의 가치는 상당하다. 제3차 전쟁이라고 불리는 국가간, 기업간의 치열한 정보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보는 힘인 동시에 곧 돈이 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다”라는 병법의 지침은 이제 첨단 기술력에 사활을 건 기업들이 상대방의 정보를 빼내고 이용하는 불법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위해 사용된다. 정보획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로 인해 기업의 합병 및 인수, 신주발행, 인사, 최신개발 기술 등 돈이 될만한 정보가 발생하는 곳에는 언제나 산업스파이에 의한 정보누출의 위협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실제 산업스파이에 의한 정보유출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대응책이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그 대응방법에 있어서 경찰과 같은 법집행기관과 큰 견해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 신기술 프로젝트의 정보가 새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필자가 미국 탐정소에 근무하던 새내기 시절의 일이다. 어느날 아침, 탐정소 동료 수사관과 전날 처리한 수사기록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전 수사관들의 합동회의가 소집됐다. 일반적으로 수사회의는 사건을 수임한 담당 탐정과 팀장들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팀장급이 아니고서는 누가 어떤 사건을 어떻게 조사하고 있는지는 심지어 알 수 없는 것인데 그날은 뭔가 큰 사건이 터진 것 같았다. 탐정소 내규상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도 금지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전 수사관의 소집은 일년에 몇번 있을까 말까한 중대한 브리핑이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전체 회의가 소집되고 회의장으로 들어선 탐정들은 모두들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무슨 일이냐며 눈짓만 보내고 있었다.

잠시후, 소장이 두 개의 파일을 들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하나는 사건을 의뢰한 회사에 대한 파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사진행계획에 대한 작전파일이었다. 소장이 전 수사관을 소집시킨 이유는 다름아닌 산업스파이에 의해 최신 기술을 극비에 개발하고 있는 한 회사의 프로젝트가 새나가고 있는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극비 프로젝트인 만큼 어느때 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회사 내부의 보안팀은 정보유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꼬리를 찾아내긴 했지만, 정확하게 누가 어떤 경로로 정보를 빼돌리는지, 즉 산업스파이의 실체를 밝혀내고 있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어떤 경로로 정보가 외부로 새나가고 있는지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글팀과 타이거팀

극비 프로젝트 정보 유출의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이글과 타이거, 2개의 전담 수사팀이 구성되었다. 사건해결을 위해 두 개의 팀이 독자적인 접근방식을 이용해 별도로 움직이는 작전이었다. 이글팀은 신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탐정을 외부에서 영입, 위장 취업을 시키는 전통적인 언더커버(Undercover) 작전에 착수했다. 회사의 보안팀과 경영책임자의 동조아래 한명은 극비 프로젝트의 연구원 인턴으로, 또 다른 탐정은 연구소의 청소원으로 회사에 잠입. 내부자에 대한 정보유출의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원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경영진은 신기술에 대한 상용화 가능성과 시장성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시켰다.

프로젝트의 중단은 외부적으로는 더 이상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보안 감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프로젝트는 생성의 규칙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연구의 절반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현금 가치도 상당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은 수개월에 걸친 프로젝트의 중단으로 그동안 투입했던 인력과 비용에 대한 막대한 손실을 감안하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면서까지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글팀은 위장 취업한 탐정으로부터 어떠한 성과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글팀은 극비 프로젝트의 정보유출은 내부자의 소행일 것이라는 데 사건의 초점을 맞춰놓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사관들은 범인을 점찍어 놓고 거꾸로 혐의를 벗겨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의 자료가 수집된 후 혐의가 잡혔을 경우에 실시되는 것이다.

필자가 속해있던 타이거팀은 이글팀의 언더커버 작전에 대해 내부에 협의자에 대한 정황증거나 그러한 기미를 포착했는지에 대한 초기적인 의문을 제시했다. 결국 이글팀은 회사 보안팀의 강력한 주장과 요구에 의해 미끼를 던진 일종의 함정수사를 벌인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회사측의 보안팀장은 경찰 고위간부 출신이었다. 그의 경력을 전해들은 바로는 행정, 지휘 업무계통에서는 10여년 넘는 연륜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실전에서의 수사경력은 전무했다. 그렇다고 막강한 입김을 가진 보안팀장의 의견을 무시해 버릴 수는 없었다. 대 회사의 특히 신기술 개발 등 기밀을 많이 다루는 회사의 경우는 보안팀은 경영팀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고 오직 방침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다. 물론 최고경영자도 보안문제에 관해서는 보안팀장의 통제를 받을 정도이다.

  ■ 또다른 접근경로는?

두 번째 전체 회의가 소집됐다. 회사 보안팀과 이글팀의 공조수사의 진행상황에 대해 타이거팀은 통신망 도청 등에 의한 경쟁사 등 외부의 소행 일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내부의 유출이 아닌 외부에서 고용된 산업스파이의 접근경로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날 회의는 보안팀에 의해 고용된 우리의 입장을 고려, 이글팀과 타이거팀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되, 통신망 감시에 무게를 두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타이거팀은 곧바로 회사의 통신망에 대한 보안점검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내부자에 대한 정보유출의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그 조사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연구실에 위장취업된 이글팀의 탐정은 동료 연구원과 친분을 다지고 술자리를 만들어 연구실적을 빼내는 공격적인 접근 방법을 시도키로 했다. 위장 연구원은 그 첫단계로 연구관련 자료를 쓰레기통에 흘리는 등 행동을 통해 동료 연구원들에게 고의적인 정보유출 수작을 넌지시 눈치 채도록 시도했다. 수사팀의 계획대로 위장 연구원의 이런 행동이 계속되자, 이를 보다못한 한 연구원이 정보유출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글팀의 위장 연구원은 프로젝트 중단이 발표된 터라, 연구관련 자료가 무용지물인줄 알았다며 쓰레기통에 문서를 버린 것은 실수라고 둘러댔다. 게다가, 실수를 덮어 달라며 연구원들과의 술자리를 마련했다. 위장 연구원은 술이 건해지자 넌지시 “프로젝트 정보를 현금화 할 생각이 있냐”, “그 동안 연구한 시간과 열정이 사장되는 것이 아깝지 않냐”며 자리에 모인 연구원의 마음을 떠보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극비 프로젝트의 정보를 외부에 팔겠다는 생각은 커녕 극비 프로젝트의 담당 연구원답게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의 투철한 프로정신을 보여주었다.

이글팀은 일단 이 연구원을 혐의자 명단에서 제외키로 하고 또 다른 연구원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자 결국 위장취업 연구원은 연구원들에 의해 회사 보안팀에 고발되었다. 이글팀의 위장 연구원은 작전에서 퇴출되었지만, 1차 작전의 예상대로 내부 연구원의 혐의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할 것이 없었다. 남은 것은 통신망 보안 문제였다. 하지만, 통신보안은 당시 우리 탐정소의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결국 통신보안 전문가를 동원, 회사와 연결되는 모든 통신라인을 점검했다. 그러나 도청장비나 도청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또한 연구실과 관련부서 간의 전화라인은 음성을 전자 코드로 바꿔주는 ‘디지털 스크램블러’라는 보안 시스템이 설치돼 단기간에 그 코드를 푼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내부자에 의한 정보유출도 아니고, 통신망에 의한 도청도 아니고, 그렇다면 회사 보안팀이 얘기하는 정보유출은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가? 수주일에 걸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 레이저 빔을 이용한 첨단도청 현장

또 다른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제3자에 의해 보안팀 자체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보안팀 등 회사 책임자들과의 모든 작전회의는 외부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최첨단 추가 장비를 동원, 회사의 주요시설을 24시간 감시키로 했다. 주요 회의실의 모든 창문은 커튼으로 시각을 차단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파탐지 팀은 모든 공중파의 파장을 감시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어느 날 회의실에서 우리는 아주 미세한 파장의 움직임을 포착해 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전파탐지팀은 탐지기를 이용해 회의실 구석구석을 샅샅이 검색했다.

정밀검색이 이루어진 몇 시간 후, 전파의 미동을 일으킨 것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점 크기 만한 레이저 빔 때문임이 밝혀졌다. 불과 1cm도 안되는 직경의 레이저 빔속에 모든 회의 내용이 실려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레이저 빔이 어디서 들어오는 것이냐는 것이다. 정보유출의 결정적인 단서를 잡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산업스파이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밝혀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레이저 빔을 발견한 다음날부터는 프로젝트의 코드를 바꾸고 위장회의를 진행시켰다. 이것은 보안팀장의 깜짝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었다. 외부에 있는 산업스파이의 정체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정보가 경쟁사로 새나가고 있다는 전제하에 허위 정보를 흘려 상대에게 간접적인 역 피해를 주자는 것이 보안팀장의 제안이었다. 보안팀장과의 생각이 오랜만에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머지 않아 그 허위정보를 입수한 경쟁사를 통해 허위정보에 기초로 한 소문이나 정보가 다시 흘러나올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그 상대를 확실히 발견할 수도 있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이글팀은 회의장에서 레이저 빔을 추적하고 타이거팀은 회의장 건물 주변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레이저를 이용하는 첨단 도청장비를 사용하는 상대의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팀간의 교신은 일체 금지되었고, 꼭 교신이 필요할 때는 인편으로 메모쪽지가 전달되었다. 이글팀과 타이거팀은 작전회의에서 정한 스케줄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감시망을 좁혀 나갔다. 전문가가 제시한 사정거리의 1차 포위망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팀은 포위망을 두배로 넓혔다. 그리고 포위망을 넓인 첫날 드디어 70년식 구형 레저용 밴을 포착할 수 있었다. 수사팀은 밴에 타고 있는 산업스파이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일단 경찰을 동원 불심검문을 시도했다. 그러나 상대는 프로였다. 그는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 슬며시 자리를 피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그렇다. 그것은 그가 경찰의 무전조차도 감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 뛰는자 위에 나는자.

브레인 파워 게임 몇 번의 숨박꼭질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의 시간이면 영락없이 레이저 빔을 회의실 안으로 쏘아대는 대담함을 보였다. 경찰의 동원조차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수사팀은 동네 불량배로 신분을 위장하고 시비를 걸어 차안을 확인키로 했다. 회사의 보안팀장을 비롯해 타이거팀의 인원이 불량배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골목을 지나 밴의 뒷편으로 접근해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차량 내부에는 최첨단 장비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아울러 수북이 쌓인 피자상자와 종이컵 들이 바닥에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와 맞닥들인 상황에서도 상대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도청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느 구석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모든 장비의 전원은 꺼져 있었고 또한 이 차안의 장비에는 음성이나 영상을 녹화하는 장비는 아예 실려있지 않았다. 상대는 비상한 도청의 천재였다. 이 같은 사태를 대비해 미리 결정적인 증거가 될만한 녹음 장비 등은 아예 갖추지를 않고 모든 내용을 머리 속에 기억했던 것이다. 고성능 도청 장비를 소유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는 기소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소가 되더라도 집행유예 같은 가벼운 처벌로 끝날 것이므로 그 정도의 처벌로 배후를 밝힐 정도의 애숭이가 아니라는 것은 그가 보유한 장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 문제가 가시화 될 경우 회사의 신용이 실추되는 등 소득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 보안팀장의 의견이었다. 물론 혐의자에게는 눈치 채지 않도록 행동을 했지만 경찰의 출동을 매번 빼돌린 재빠른 그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모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고, 대결은 수사팀의 참패였다. 결정적인 배후를 밝히기는커녕 도청을 했다는 증거조차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을 의뢰했던 회사 보안팀은 극비 프로젝트의 정보유출이 내부자의 소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과 보안의 허점을 찾아 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면서 오히려 수사팀을 격려했다. 그것으로 사건에 대한 우리의 수사는 마무리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수사팀의 참패로 끝났다고 생각한 이 게임의 뒷얘기이다. 이후에 보안팀 관계자를 만나 건네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 날 보이지 않았던 큰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내용인 즉, 보안팀장이 그날 산업스파이의 차안에서 도청의 증거를 하나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 큰 것을 위해 그것을 영원이 덮어두었다. 그 증거는 다름아닌 핸들에 긁어 놓은 허위 프로젝트의 암호명이었다. 그 후 사회는 원래의 극비 프로젝트를 완료했고, 더 이상의 불법 정보유출 행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날 산업스파이가 전해준 허위 프로젝트 내용을 근거로 지금까지도 머리를 싸매고 있을지 모를 경쟁업체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비단 정보를 유출당하는 쪽 뿐만 아니라, 정보 유출을 요청한 기업측에도 큰 피해를 입히는 산업스파이의 아이러니를 떠올리게 된다. 그기로, 수사경력은 부족했지만, 한 수 앞을 내다본 보안팀장의 혜안에 뒤늦게나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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