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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관리자

19 년만에 얼굴도 모르던 엄마를 찾았어요

19 년만에 얼굴도 모르던 엄마를 찾았어요

저는 19년전인 간난 아이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엄마가 미국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자란  나는 평생 나를 품에 안고 미소 짓는 엄마의  환상을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더더욱 몰아치기 시작했고 엄마를 찾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인터넷의 강효흔 탐정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되었고 의뢰한지 하루만에 그리운 엄마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루속히 엄마를 만날 마음에 매일 밤 잠을 설칩니다. 왜 이렇게 입국 수속이 더딘지 .....

정말 고마워요. 

20 년만에 입양간 남 동생 찾아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서 강효흔 탐정의 홈페이지를 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이런 직업도 다 있구나 하는 정도로 지나 쳤으나 며칠 후 동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복구 쳤습니다. 돈의 가치조차도 모르고 풍족하게 살던 저희 가족은 20년전 가장과 모든 재산을 한번에 잃고 나니 당장 끼니걱정을 할 정도로 환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저희 가족은 어린 동생들만이라도 끼니를 굶겨서는 안되겠다는 짧은 생각에 국민학교에 다니던 남 동생을 미국 가정으로 입양 보내게 됐습니다.  연속극이나 소설책에서나 보며 남의 일처럼 지나쳤던 이야기들이 우리 가족에게도 현실로 다가올지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족은 이제  인터넷에서 만난 강효흔 탐정님과의 인연으로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 탐정님 !.  우리 주변에는 저희 가족 같이 불행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웃들이 많답니다. 행복을 심어 주는 메신저의 사명으로 갖고 사업을 하시면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하실 것입니다 .

23년전 헤어진 친구와 재회

우선 옛 친구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친구와 저는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가족처럼 같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23년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고 그후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이 인터넷의  홈페이지를 보고 설마 하며 별 기대없이 일을 맡겼더니 이틀 후 주소를 찾은 것 같다며 연락이 왔고 사흘 후 그 친구와 극적으로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비록 23년이란 세월에 우린 모두 중년이 됐지만  목소리와 그 감격은 학창시절 그대로 였습니다. 정말 믿기 지 않는 일입니다. 주민등록 제도도 없다는 그 넓은 미국 땅에서 지난 20여년간 누구하고도 소식을 끊고 살았던 그 친구를 단 며칠만에 찾을 수 있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답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다시 젊음을 되찾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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