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관리자

30 년만에 자녀와 상봉

30 년만에 자녀와 상봉

저는 30년전 피치 못할 가정형편으로 인해 남매를 모두 미국에 입양 보냈습니다.  그러나 70 이 넘은 지금 가슴이 너무 아파 이대로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동네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간 이웃에 게 내 자식들을 꼭 찾아 달라고 애원했고 이들은 입양당시 양부모가 시카고에 살았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생각나 시카고를 수소문하던 중 한 신문사의 권고로 강효흔 탐정에게 의뢰를 했고 의뢰한지 이틀만에 30년간 목매 그리워하던 자식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목이 메어 자식들에게 사죄할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글쎄 제 자식들이 아들은 의사, 딸은 간호원으로 성공을 했지 몹니까 . 양 부모에게도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23 년만에 여 동생과 극적 재회 

저는 70 이 다 된 노인입니다. 남달리 총명했던 여동생은 지난 75년 미국으로 유학 길을 떠났고 당분간 연락이 되었으나 실수로 전화 번호를 잃어 버리고 우리도 이사를 하는 바람에 소식이 두절됐습니다. 생이별을 하고  꿈 속에만 그리며  살아 오던 중 저희 가족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고 더욱이 동생 생각에 가슴을 앓아 왔습니다. 동생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절실했으나 시카고 신문에 난 강효흔 탐정의 광고를 수개월씩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도 계속 망설여 왔습니다. 수년전의 일입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동생을 만난적이 있다며 찾아 주겠다는 사람으로부터 돈만 사기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지난  5월 5일 큰 마음을 먹고 강효흔 탐정을 만나 전에 상처 받은 이야기를 해주며 단단히 다짐을 받고 수수료는 찾은 다음에 주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의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강 탐정은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정부로부터 공인된 탐정이라 할지라도 큰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뢰 후 집에 들어온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강 탐정으로부터 찾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더더욱 의심이 갔습니다.      설마  ........ 나는 "확인을 해야겠다" 며 가족관계가 적힌 편지를 동생이 산다는 주소로 보냈습니다. 다음날 오후 편지를 받은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고 우리는 복구 치는 눈물로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23년간 쌓인 정을 나누었습니다. 이 날 하루는 한국,  미국에 흩어져 사는 온 가족이 동생을 찾은 기쁨을 나누느라 전화가 온종일 불통이 될 정도였습니다. 다음달에는 전세계에 흩어진 가족이 모두  회동키로 했습니다. 또  방송국,  신문사 등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몰려와 인터뷰를 해 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또 잠시나마 의심을 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13 년만에 엄마와 재회

저는 13년전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와 살면서도 어릴 적 엄마 품을 잊지 못했습니다.  이혼사유는 성격차이라는 이야기를 늘 들었지만 아빠는 늘 엄마를 못잊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엄마도 없이 홀로 고생하며 나를 키워준 아빠의 모습을 지켜볼 때  이미 재혼한해 버린 엄마는 머나먼 사이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20살이된 지금 저를 데려 갈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엄마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어 아빠에게 허락을 구했고 강 탐정님의 도움으로 며칠 후 엄마를 찾았습니다.  탐정은 영화에서 나 보는 환상 속의 사람인줄 알았는데 바로 제 곁에 있었습니다.

조회수 36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1965년, 56년 전에 헤어진 이복형제와 아버지 얼굴, 추억을 찾았습니다.

저(1962년생)는 아버지(1965년 사망, 전처 사망에 의한 재혼, 2남 1녀 상태), 엄마(2021년 6월 사망, 초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나오셔서 재혼하여 여동생과 남동생을 낳으셨습니다. 저는 4살 때여서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일절 이야기 해주지

20년 만에 목소리.....꿈만 같았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 언니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언니의 생사도 알 길이 없던 상황에서 어딘가에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기뻤고, 선생님 덕분에 기대에 찬 마음으로 오늘 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20년 만에 목소리라도 들으니 꿈만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희미한 기억 속에만 있던 언니를 50년 만에 만났습니다!!!

저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50대후반 여성입니다. 저희 어머님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본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었고, 철이 없었던 10대에 정략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찍 결혼하지 않으면 위안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의 어머님은 건강하셔서 다산의 복을 얻어, 첫 번째 아기, 바로 저의 큰 언니를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