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내동생의 소식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내 기억 속의 엄마 동생인 이모는 예쁘고 자신감 있는 상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모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간 후에 소식이 끊어지고, 엄마가 동생의 안부를
걱정할 때 나도 어린나이였지만 이모에 대한 기억을 잊지않고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좋게 미국에서 새로운 전공을 공부할 기회를,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고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처음에 생소했던 미국이란 땅에서 생활의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소원대로 이모를 찾아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결정했다고 결과를 쉽게 얻기는 어렵겠지요. 특히나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이국 땅에서 사람을 찾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모를 찾기 위해 한일은 최대한 많은 이모에 대한 정보를 끌어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전의 소식이 끊긴지라 이모의 한국이름, 생년월일, 미국인 남편의 한글로
표기된 이름과 사십년 전의 미국집의 주소 그리고 재혼한 사람이 중국인이라는 것과 딸이
하나 있다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권의 이모의 영문이름이라도 알고 싶어
한국의 출입국관리소에 문의해 봤으나 본인 또는 직계가족(자식 or 남편)이 아니면 정보를
줄 수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미국의 온라인의 사람찾기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았지만, 가지고 있는 부족한 정보로는
나의 힘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온라인을 돌아다니다 사람찾는 탐정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즉시 미국인
탐정에게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일하는 과정이나 결과는 실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모가 한국을 떠날 때의 사회적 상황이나 한국인의 성향이나 생활방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미국탐정이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이모를 찾기에는 어려운 일이었을
듯 합니다. 더욱이 확실치 않는 사람을 조사하고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조사할 때마다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몇 차례의 실패를 한 후 몇 년이 흘렀습니다. 엄마가 연세가 드실수록,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모를 찾아드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운 차에, 우연히 한국 온라인에서 강효흔 공인탐정님의 기사를 읽고 한국탐정이 한국사람 찾는데에는 좀 더 센스나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연락을 드리고, 의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실패의 경험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하지는 않았고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엄마와도 얘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의뢰를 드리고 보름이 되지 않은 어제 엄마는 40년 만에 이모와 통화를 하셨고, 불과 두시간 거리에 살고 계시던 이모는 남편과 함께 전화를 끊은 후에 바로 저희 집에 오셔서 엄마와 부둥켜안고 기쁜 그리고 서러운 눈물을 한참 흘리셨습니다. 이모를 찾기 전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고 했습니다. 미국이 넓기도 하지만, 혹시 이모가 가까이 살고 있는데도 내가 몰라보는 것은 아닐까 혹은 서로 마주칠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정말 이모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에 살고 계셨습니다. 십년이 넘는 세월을 가까운 곳에 살면서 서로 “살아는 있을까?, 고생을 얼마나 했을까?” 안타까워 하면서... 강효흔탐정님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 이모 그리고 한국의 엄마 형제 자매들을 대신해 고개 숙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8/2/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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