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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관리자

40년만의 첫 상봉.

40년만의 첫 상봉.

Dear Mr. Kang:

I regret the LONG delay in sending you an official thank you for locating my mothers brothers in Seoul. Since we spoke my husband, my brother in law, sister in law and I went on our trip to Japan and Korea. We spent 4 days in Korea where my uncles met us at the airport, gave us a very nice place to stay, and gave us a wonderful tour of Seoul and even to the DMZ. They were so hospitable!!!  Seoul is A LOT bigger and more crowded than I ever imagined!  One of my uncles had several years ago held an important position for the city of Seoul and his name was even on the time capsule when he showed us!!! We wished we had more time to stay!! My Mother is finally going to be reunited with her brothers after 40 years this September. My father and I will also be going with her. Ever since I was little I have always dreamed of going back to Korea with my mother and this dream is going to come true thanks to your help!!!

I have to admit I was rather skeptical at first having NEVER done anything like this before, especially from the internet. Afterall, my mother and I only gave you just a few bits of information like our birthdates and info from her birth certificate. We only were able to give you names of my uncles and nothing else. It felt like a dream when you called about ONE week later to tell me that you had found all three of them!!!

Please feel free to place this in your website and even use me as a reference if you like. I will send pictures of my mothers visit to Seoul. I am sending 1 picture from my visit last year. My uncles are the 3 men on the left, and I'm in the middle with the white tshirt. Thank you!!!!!!!!!!!!!!!!!!

Sincerely,  Connie M. Sandifer   8/4/2006

어머님도 좋은세상에서 미소 지으실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강효흔 선생님의 도움으로 16년전 연락이 끊긴 큰언니를 찾게된 강희숙입니다. 우선 강효흔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큰언니는 21년전 국제결혼으로 미국에 갔는데 그때만해도 국제결혼은 축복받지 못하는 결혼이었습니다. 6자녀를 둔 어머니는 편치 않는 마음으로 큰딸을 멀리 보내시고 항상 마음 아파하셨으며, 그리워하셨습니다. 큰언니는 결혼 후 1990년 5월까지는 편지를 통해 서로 소식을 주고 받았으나, 어찌된 이유인지 끊긴 편지는 다신 연락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큰언니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고, 바쁜생활속에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2개월전 갑자기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가족들 모두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슬픔은 더욱 컸습니다.

어머니 생전에 그토록 큰딸을 그리워하셨는데....   큰언니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인터넷 검색을 통해 미국이산가족센터를 알게 되었고, 강효흔 선생님을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생사여부를 확인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직접 언니와 통화 할 수 있게 되니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오랜 미국생활과 한국인을 만나지 못해 우리말을 많이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통화하면서 큰언니가 가졌던 오해도 풀리고 이제라도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해 하였습니다.

좀더 일찍 강효흔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저희 어머니가 딸의 생사도 모른채 그렇게 가시진 않았을 텐데.......  아쉬움과 후회도 많지만 어머니가 가져가신 무거운 짐 하나를 덜어드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쯤 어머니께서도 좋은세상에서 미소를 짓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12월이면 큰언니가 휴가를 얻어 한국에 다녀갈 수 있답니다.   훌쩍자란 동생들의 모습과 조카들의 모습을 가족사진을 찍어 큰언니에게로 보내야겠습니다. 큰언니를 만날 수 있는 12월이 너무도 기다려 집니다.

강효흔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와 같은 다른 많은 분들께도 더 많은 희망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4/26/2006  강희숙

27년 만의 상봉

우선 강효흔탐정님께 감사하단 말씀부터 드리고 싶네요. 지금으로부터 27여년전 제 동생은 한국에서 국제결혼을 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편지도 주고받고 전화도 가끔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과의 연락이 끊겨버렸습니다. 동생을 찾고싶었지만 그 넓은 미국땅에서 동생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막막하기만했습니다. 그러다 계속 세월만 지나갔고 모든 가족들은 동생이 사망했을꺼라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전에 동생에게 잘해주지 못한걸 미안하다고 하셨고 동생이 보고싶다는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동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사관이며 영사관이며 모두 연락을 취해봤지만 답변은 한결같이 다 못찾는다는소리였습니다.

저는 좌절했지만 인터넷으로 한인회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을 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 사람찾기라고 검색을 하였는데 강효흔탐정사무소가 나왔습니다. 홈페이지에 글을 읽어보니 강효흔이라는 탐정분이 미국에 있는 사람을 찾아주는일을 하신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심쩍어 고객체험담에 글이 올려져있는분에게 전화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찾을수있다며 저에게 힘을 주셨고 강탐정님을 믿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소설도 아니고 무슨 탐정이야 ...  이런생각이 들었지만 고객체험담을 읽어보면서 진짜일까 ?. 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 의뢰를 했습니다.

처음 답장에서는 동생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는것을 다 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탐정님께서 동생의 흔적을 찾을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순간 저는 좌절했지만 탐정님께서 계속 찾아 보겠다며 저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의뢰한지 일주일째 되는날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탐정님이셨습니다.  동생을 찾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더군요. 솔직히 못찾을줄 알았습니다. 탐정님은 제 동생의 경우는 백건중 한건정도 되는 그런 어려운 경우라고 하셨기때문입니다.

지금 방금 동생과 전화통화를 하였습니다. 25년만에 듣는 동생의 목소리에 순간 저는 울컥했습니다.  저희는 지금 말로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너무너무 기쁩니다. 저희 가족에게 희망을 주신 탐정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19/2006   서울에서 우학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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