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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other reunited in Korea

My mother reunited in Korea

Dear Mr. Kang,

My Mother was finally reunited in person with her brothers last month!! She was in Korea for about 2 1/2 weeks with my father. I only stayed for one week. She was overwhelmed by it all!!! She had so much catching up to do with her brothers and so many questions about her parents since. Her mother passed shortly after she was born and her father passed when she was about four. The trip was so enlightening for everyone involved. My parents will be back Today. Can't wait to see them.Again, I can not thank you enough !!!!.

Sincerely, Connie Sandifer   10/08/2006

P.S.- These are pictures of my Mother(with the sunglasses) and her three brothers and a sister-in-law. They are standing in the town where she was born...and in the very spot where their farm house used to stand before it was burned down during the war.

미국 사우스 케롤라이나 [ 더 스테이트 ] 신문 기사


36년만의 연락

우선 강효흔 탐정님께 감사하단 말씀부터 드리고 싶네요.

지금으로부터 36 여년전 제 아버님의 지인은 당시 월남에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은  편지가 몇번 왔었지만 몇개월 후부터 연락이 끊겨버렸습니다. 그후로 월남이 패망하면서 다른 나라로 전전하며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잊고 살게되었으며, 지난날들에 대한 기억을 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런데 근래들어서는 옛 일들이 주마등 처럼 간절하게 보고싶은 사람들이 떠오르곤 하였나 봅니다. 간혹 약주를 드시고 나면, 20 여년전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남기고 간 유품도 있었지만 ,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면서  더욱 미국으로 가신 분에 대한 소식을  알고싶어 하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소식을 알아드릴려고 여러방법을 찾던중 미국의 인터넷에 사람찾는 검색을 하던중 강효흔탐정사무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 글을 읽어보니 강효흔이라는 탐정분이 미국에 있는 사람을 찾아주는일을 하신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찾을수있다며 저에게 힘을 주셨고 찾을분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는것을 다 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탐정님께서 그분의 흔적을 찾기가 상당히 힘들거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순간 저는 좌절했지만 탐정님께서 계속 찾아 보겠다며 저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의뢰한지 사일째 되는날 메일로 답장이 왔습니다. 탐정님이셨습니다.  그분을 찾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더군요. 솔직히 못찾을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요즘 자주 전화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옛날이야기들을 합니다. 그토록 찾고자 하는 분을 찾아주어  저희는 지금 말로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너무너무 기쁩니다. 저희 아버님에게 희망을 주신 탐정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8/20/2006   UAE 에서 james 드림  


10여년만에 언니와 상봉.

우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제 이모와 통화를 했습니다. 하나뿐이 여동생이라 표현은 하지 못하시지만 그리워하는 마음은 간절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무정보도 없이 찾아준다는 말만 믿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찾은 후 수수료를 입금한다고 해 일단은 믿음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더군요. 일부 정보를 알려주고 추가 수수료를 요구하는건 아닌지... 의뢰하는 저도 많이 까다로운 편이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많이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찾고자 하는 사람의 기억력이나 가지고 있는 정보가 부족한 경우에는 이 또한 어려운 일이겠지요.

저도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50% 확률로 시작했는데 어제 엄마와 이모가 통화하는것을 보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모쪽에도 많은 것을 확인한 모양입니다.

꼭 만날수 있도록 해주려는 배려가 아닌가 합니다. 꼼꼼하게 처리하고 불안하지 않게 진행과정을 매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10월쯤에 미국에서 감사의 편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난영  8/9/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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